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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to Death

늘 가까이에 있는 죽음에게


화창한 아침을 맞이하며 살아있음을, 또 하루를 살 수 있음에 감사하며 눈을 뜬다. 오늘 아침에도 동료 목사님의 어머님 소천 소식을 들으며 죽음이 가까이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살기 위해 하루하루 보내지만 누구나 언젠가 마주할 ‘죽음’. 멀리 있다 생각하고 멀리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넌 항상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지금도 죽음을 마주하는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너를 마주한다. 몇 주 전에는 우리집에서 두 블락 떨어진 곳에 너가 찾아왔다. 남자와 여자 둘이 다투다 여자가 부른 사람이 총으로 남자를 죽였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찾아온 너를 통해 많은 이들이 충격과 아픔에 휩싸인다. 동생의 죽음을 본 형이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또 죽음을 만났다. 이렇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죽음과의 만남’ 소식이 이 곳 저 곳에서 끊임없이 들려온다. 그 소식을 들은 우리 아이들도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넌 늘 가까이에 와 있다.

지난 토요일 뉴욕 버팔로에서는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가는 마트에서 총기난사가 있었다. 왜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지… 뜻하지 않은 죽음은 아직도 설명하기 힘들다. 10명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고 뉴스에서 표현하는 ‘죽음’, 죽음아 내게 어떻게 설명해 줄 건지 궁금하구나.

죽음은 헤어짐이다. 이 땅에서 다시 볼 수 없음을 깨닫고 죽음을 만나는 순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깊은 슬픔을 선물하는 시간이다. 하염없이 울고 울어도… 특히, 자녀를 잃은 부모의 마음은 울어도 또 울어도 채워지지 못하고 가슴에 평생 품고 살아가는 것을 본다. 죽음아! 남겨진 가족들에게 너가 준비한 또 다른 선물은 무엇이 있을까?

넌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언제 찾아올 지,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생각해 본다. 미리 알려주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답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아마 끝까지 알려주지 않고 늘 가까이에 있을 너. 죽음은 어쩌면 내 삶의 일부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너와 대화를 해 본 적도 없고 사실 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언젠가 마주할 너에게 나의 복잡하고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전해본다. 왜, 그렇게 자주 만나고 목격한 죽음과 대화를 해보려 하지 않았을까? 그저 피하고 싶고 나에게 당장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까? 그저 살아가는 데 고민하고 쓰는 에너지도 부족한데 죽음인 너에게 투자하고 생각할 여유가 어쩌면 없었던 것인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재밌는 건, 죽음아! 너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다 산 사람들이다. 이미 죽은 자는 너를 찾지 않는다. 아무 말도 없다. 그래서 어쩌면 넌 살아 있는 자의 친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죽은 자들은 너와 더이상 대화도, 생각도, 마음도, 감정도 나누지 않는다. 죽은 자들에게 ‘죽음’은 필요없다. 살아 있는 나에게 ‘죽음’ 너가 필요하다. 그 말은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가까이에서 스스로에게 도전하고 나를 깨워주는 역할을 너가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뜻이다.


살아있는 나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죽음아! 이제 종종 대화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이에 지내다 만나는 날, 그 살아 숨쉬던 시간이 좋았다고 기억되길… 그리고, 죽음 너를 만난 후에 또 주어질 ‘영원함’이란 시간 속에서 너를 더 깊이 만나는 시간을 기대해 본다.

5.17.2022 죽음과 가까이 있지만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내가


-김진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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